"주부 이승희 싱어송라이터가 되기까지 "

 이승희 / 1958년 生

 숙명여대 재학시절 교내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1978년 교내 팝송 경연대회에서
 데비분의 You light up my life를 불러 최우수상을 수상한다. 이화여대 대학원 교육
 심리학과를 졸업, 결혼후 한 남편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 사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
 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여느 주부들과 다름없이 열심히 산다.

1990년 어느 백화점 시 노랫말 공모전에서 작고한 친정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출품한 노랫말. '아버지'가 가작에 당선하면서 노랫말을 쓰기 시작하고 자신이 쓴 노랫말에 곡을 붙여 보고 싶어 본격적으로 작곡공부에 도전한다.  

1998년 I.M.F 한파로 힘들어하는 가장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아내의 마음을 담은자작곡 I.M.F (I'm fighting)을 압구정천주교회 주최 금모으기 행사 때 김수환 추기경 앞에서 발표 여러 매스컴의 격려를 받는다. 결혼 후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음악에 대한 치열한 사랑과 열정으로 까맣게 타 들어간 가슴앓이의 과정을 담아 책 '도전하는 여자가 섹시하다'를 세상에 냈다. "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가는 주부들 에게
'간절히 소망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'는 신념과 용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...
"주부들의 꿈과 희망, 사랑과 애환, 생활과 정서를 담아 본인의 자작곡으로 CD를 완성한다.


'중년의 꿈'

마흔이 넘으면 '나'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.나이가 들면 들수록 '나'라는 존재는 뭔가를 향해 목말라 하고 추구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. 이런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난 나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로 한건지 탐색했고 오랜 방황 끝에 그 답을 찾아내었다.그건 어릴 적 꿈에서부터 나온 나의 소망이었다. 음악을 내곁에 머무르게 하는 것. 음악 속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듯 내 자신을 본다.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다.그러나 그때 난 이미 마흔을 바라보는 아이 둘 달린 '혹부리 할머니' 이었다. 늦었을까? '그래도 난 할 수 있어,천천히 오랜 시일을 두고 해나가면 되는 거야.' 포기하기엔 나의 갈망이 너무도 컸다. 문제는 가족에게 충실치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었다.주부가 뭔가를 하려 할 때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불안, 이렇게 흔들리는 내 자신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기도를 통해서 다져가는 내 자신이었다.  그리고 난 묻혀진 광산에서 사금 조각을 주워 모으듯 배우고 고민하면서 얽혀진 실타래를 풀어갔다.  어느덧 음악의 파편이 내 주머니에 조금씩 모이게 되고 난 그때마다 기뻐했다.

이런 과정이 행복일까? 난 행복해서 울었다.

남이 보면 하찮은 작품이지만 내겐 소중한 그 무엇이었다.

이제 그 광산에서 캐낸 사금을 재련하여 조그만 금 목걸이를 만들어 보았다.

'그 목걸이를 중년들에게도 걸어 주고 싶다. 그리고 난 그 목걸이가 꿈과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. 중년은 아직도 많은 가능성을 가진 다시는 놓칠 수 없는 '진정 아름다운 시절'이다.

우리. 못 다 이룬 꿈에 도전해보자! 이승희는 중년 여러분을 진실로 사랑한다.

   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Copyright 2002 by www.shlee.pe.kr All Rights Reserved.